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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밭골 전설

중앙인터넷… 2007-04-02 (월) 17:11 12년전 1407  




동래 차밭골에 얽힌 전설, ‘은혜 갚은 차(茶)나무 神

산세의 아름다움이 제2의 금강산이라고 불리는 금정산(金井) 기슭에 위치한 금강공원 (부산시 지방문화재 기념물 제 26호) 안에 아담스런 고찰 금강사가 있다.
이 금강사 일대를 차밭골로 조성 개발하여 차밭골 문화제와 같은 행사가 매년 펼쳐지고 있다.
금강사 혜성스님께서는 사찰내에 차실과 차밭 그리고 선다회를 만들어 차문화 보급에 힘쓰고 있다.

옛날 차밭골에 얽힌 한 토막의 전설같은 이야기가 있다.

시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마을의 옛 이름은 성내라 불러졌다.
이 마을에 ‘산지’라 불리는 한 노인부부가 농사를 지으며 오래 전에 살았다. 추운 겨울이 되어 때 마침 눈이 많이 내려 만덕산 과 금정산 일대가 눈에 덮여 땔나무를 하러갈 수 없게 되자 마을 사람들이 모여 의논한 끝에 차밭골에 있는 작설나무를 베어 땔감으로 쓰기로 결정하였다. 이 소식을 접한 산지 노인은 예로부터 동래 평야 농민과 이 마늘 사람들의 차약(茶藥)을 위해 가꾸어 오던 작설나무를 베면 안된다고 만류를 하였으나 마을 청년들은 작설나무를 베어 땔감으로 하지 않으면 우리가 죽게 되므로 강행할 뜻을 보였다. 산지노인은 부인과 의논한 끝에 자기집 행랑채를 비워 줄 테니 그것을 헐어다가 땔감으로 쓰고 차밭골 작설나무는 베지 말라고 호소하였다. 작설나무를 아끼는 산지노인의 정성에 감복할 뿐만 아니라 임시 다급하여 작설나무를 베어버리면 내년 봄에 당장 필요할 것을 예상하여 산지노인의 말씀대로 행랑채를 뜯어 땔감으로 하기로 하였다. 산지노인의 노력으로 작설나무의 생명은 구해졌고. 또 보호도 받게 되었다. 다음 해 봄, 농사철을 맞았다. 산지노인의 집은 행랑채가 없어서 머슴을 살겠다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 농사짓는 머슴을 구하지 못해 걱정과 실의 에 차 있었다. 남들은 못자리를 조성하는데 머슴이 없어 마음도 타고 몸까지 아프다. 울적한 마음을 달래 보려고 차밭골로 올라가 차샘물을 맥 없이 마시는 순간 한 젊은 청년이 나타나 산지 노인에게 무슨 걱정이 있느냐고 묻는다. 산지 노인은 농사철이 되었는데 머슴이 없어 농사를 못 지을 지경에 이르렀다고 하소연을 하였다. 또 머슴을 살 행랑채도 없다고 하며 지난 사연을 상세히 이야기 하였더니 그 청년은 자기를 머슴으로 써 달라고 큰 절을 한다. 산지 노인은 마음속으로 기뻐할 뿐 표현할 수 없었다. 오히려 산지 노인이 머슴으로
있어 달라고 부탁을 해야 할 처지인데도 불구하고 청년의 간청을 받으니 기쁘기 그지 없었다. 그날부터 산지노인의 집에는 새 청년머슴을 맞았다. 청년은 다른 머슴보다 부지런히 일을 잘 하여 만족한다. 머슴에게 해마다 하는 논에 못자리를 하려고 하자 머슴은 금년은 찬물이 나는 차샘 가까운 곳에 못자리를 해야 하오니 금년만은 못자리하는 것을 이 머슴에게 맡겨 달라고 하소연을 한다. 산지노인은 이번만은 머슴이 하자는 데로 약정을 하였다. 그해 봄 가뭄이 계속되는 다른 논 못자리는 모두 말라 죽었다. 그러자 산지 노인 댁 모자리는 차샘물이 나는 가까운 논이니 모가 잘 자랐다. 산지노인은 남보다 늦게 못자리를 만들었으나 모심기는 일찍이 마치고, 남은 모를 이웃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어 대단히 칭송을 받았다. 이 사실이 동래 부사에게 알려져 큰 상도 받았다. 또 때 마침 원인을 알 수 없는 유행병이 번져 성내마을 뿐 아니라 인근 마을까지 환자가 늘어나 죽거나 고통을 받아 다급한 지경에 이르렀다. 청년 머슴은 차밭골 작설나무 잎으로 만든 차약을 차샘물에 타서 먹게 하니 주인 부부의 병세가 금새 치료되고 이 차약 처방법으로 이웃까지 나누어 먹으니 말끔히 병의 고통이 해결 되었다. 산지노인의 권위 또한 높아졌을 뿐만 아니라 젊은 머슴에 대한 신뢰감도 깊어 졌다. 그 해 농사는 풍년이 들어 어느 때 가을 농사 수확보다 많이 얻어 부자가 되었다. 산지 노인은 동래 관가에 청년 머슴의 지혜로 풍년을 얻은 것을 알리자 마을 경사라 하여 후한 상금도 받으니 경사가 끝이 없었다. 그 날 밤 산지 노인은 그 동안 머슴에게 아무 것도 베풀어 준 일들이 없으므로 새경을 얼마나 주면 되겠느냐고 물었더니 젊은 머슴은 산지 노인 앞에서 꿇어 앉아 큰절을 하며 눈물을 흘린다. “ 저는 할아버지가 행랑채를 마을 사람의 땔감으로 나누어 주기까지 하면서 차밭골 작설나무를 베지 못하게 하여 살아난 작설나무의 신(神)입니다. 저는 새경을 받으러 온게 아니라 은혜를 갚으러 1년간 할아버지 댁에서 일을 해 드렸으며 할머니 뿐 아니라 주위 사람들의 이름모를 유행병을 고쳐주게 되었습니다. ” 하고는 홀연히 사라졌다. 이신비로운 이야기는 순식간에 퍼져 동래 관가에 까지 알려지게 되자 차밭골 작설나무를 보호하게 되었고. 또 작설나무가 신령스럽고 가치가 있는 나무로 널리 전해지게 되었다. 이후부터 작설나무는 ‘신령나무’라 이름지어져 보호를 받아 베어 버리는 사람도 없어졌다고 한다.

제공처 : 금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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